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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생활의 기록/주말농장의 기록

토필 요리 해먹기 (aka 뱀밥, 쇠뜨기..)

by Cyprus 2021. 4. 17.

일본 만화가 다카기 나오코의 '오늘 뭐 먹지'에서 봄이면 토필을 뜯어 요리를 해먹는 에피소드를 보고서, 아이가 오래전부터 토필을 해먹자고 졸랐다. 

 

토필 사진은 이런 블로그에 잘 찍혀있는데 , 

 

blog.daum.net/kchicme/189

 

뱀밥 (토필)

       쇠뜨기의 생식줄기 뱀밥입니다 손으로 건드리면 먼지같은 꽃가루가 날리죠-- 포자가 약 200만개쯤 된다하는군요    저 생식줄기 밑에는 거미줄같이 쇠뜨기뿌리가 번져있습니다    이

blog.daum.net

봄에 잡초가 올라오는 곳이라면 어디에나 있는 풀이지만, 막상 흙색이라서 알아본 적이 없었다. 

어느 날 아이가 '저거 토필이다' 라고 말한 뒤에야 알게 된 것 같다. 

 

검색해보니 일본영화 리틀 포레스트에도 요리해먹는 에피소드가 있는 모양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쑥 정도의 느낌이 나는 소박한 봄나물인가 보지만...

 

길에서 저걸 보면 흙색으로 눈에 잘 띄지도 않는데,

먹으면 안될 것처럼 징그럽게 생겼고, (존재 자체가 방어체계랄까..) 

 

게다가 한국어 이름이 

'뱀밥'이라니까 미끈미끈 쫄깃쫄깃 더욱 맛있을 것 같고 (...) 

'쇠뜨기'라니까 쇠여물처럼 더더욱 맛있을 것 같다 (......) 

 

뭘로 봐도 식욕이 생기지는 않고... 인류 최초로 개불이나 미더덕을 먹을 용기를 냈을 어떤 선구자의 심정으로

하천변 산책로로 채취에 나섰다.  

아이와 십오분만 따면 꽤 많이 딸 수 있다. 

질기게 생겼는데, 의외로 손으로 꺾으면 '톡' 하고 부러지는 느낌에 가깝다. 

꽃봉오리처럼 생긴 부위는 버섯 갓이 마른 느낌이랄까? 

 

지나가던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저 어린 것이 대체 쑥도 아니고 고사리도 아닌 뭘 따고 있는거지? 하는 표정으로 유심히들 쳐다본다. 

중장년층에게도 쇠뜨기는 낯익거나 먹는 음식이 아닌 게다. 

 

따온 쇠뜨기의 마디를 벗겨내야 한다. 마디는 만져보면 바스락 부서진다.

마디를 까는 시간은 채취에 걸리는 시간과 대충 비슷한 거 같다.  

 

마디를 다 까고 나면 그나마 좀 '덜' 흉측해지는데, 여전히 이걸 먹어도 되나? 싶은 비주얼이다. 

서울역 대합실 재떨이에 비벼꺼진 담배꽁초 느낌 나는 줄기도 있고,

동방불패에게 흡성대공을 당한 시체의 팔뚝 같은 비주얼도 느껴진다.

게다가 마디를 까면서 초록색 꽃가루가 나오는데, 소년소녀 백과사전에서 "먹으면 안 되는 버섯의 특징" 같은 기사를 읽던 기억도 난다.

 

수렵채취의 시대를 살지 않고 슈퍼마켓에서 픽미업의 시대를 살고 있기에 

먹어도 된다는 사실을 마트나, 영농업자에게 보증받지 못한 음식을 먹는 것이 불안하고 두렵다. 

 

 

 

일본 만화 오늘 뭐먹지에서는 특별히 다른 전처리 없이 볶아먹고 삶아먹고 하던데 

우리나라 블로그를 찾아보면 공통적으로 '아린 맛이 있으니 찬물에 담가둬야 한다' 는 언급이 있다. 

 

뭐 적당히 절충점을 찾아서... 찬물에 밀가루 한 술 넣어 풀어서 끓인 뒤, 

토필을 1~2분 데친다. 데치면 흙색이 연분홍색으로 변하면서 먹어도 될 것 같은 느낌이 생겨난다. 

 

 

 

두 가지 요리를 해봤는데 

하나는 들기름 두르고 후라이판에 볶아서 맛소금 친 요리. 

 

나물 느낌보다는 숙주 볶음 느낌에 가깝게 만들어봤는데 

식감이 딱히 거슬리지 않는다. 고사리와 숙주의 중간쯤 되는 식감이랄까? 

아린 맛이나 강한 향은 느껴지지 않는다. 정통 한국식 기름과 소금 맛 나물 느낌이다.  

 

걱정했던 윗부분의 꽃봉오리? 같은 곳도 식감이 딱히 이상하지 않다. 

 

또 하나는 돈까스덮밥처럼 일본식으로 

가쓰오 장국을 달게 내고 (국시장국+맛술+생강술+간장조금+설탕많이+물 3배수) 토필을 넣어서 가볍게 조리다가 

계란을 넣고 좀 더 조려서 밥 위에 얹어먹기. 

달콤하니까 꿀맛. 

 

아이도 두 가지 요리 모두 맛 최고 최고 해가면서 (지 손으로 땄으니까 맛있었겠지. 사실 그렇게 오버할만큼 맛있는 나물은 아님) 잘 먹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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