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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생활의 기록/기타 다른 취미들

핸드드립 드리퍼 이야기 (멜리타, 칼리타, 하리오)

by Cyprus 2025. 9. 28.

커피 핸드드립 드리퍼에는 [멜리타], [칼리타], [하리오] 등 몇 개의 브랜드가 있다. 그런데 이게 브랜드에 따라서 커피 드립퍼의 모양과 규격이 다르다. 이게 무슨 첨단과학 제품도 아니므로 여기든 저기든 똑같지 않나? 싶지만 그렇지가 않다. 각 브랜드마다 고집하는 자신들마다의 규격이 있다. 그 규격은 브랜드가 지향하는 커피 취향의 철학과 닿아있기도 하다.

그거슬 알아보자.

 

멜리타


최초의 커피 드립퍼는 독일제 멜리타였다. 1873년생 멜리타 벤츠는 아들 둘을 둔 가정주부였는데, 커피를 좀 더 맛있게/편하게 끓이고 싶었다. 20세기 초반에 커피 끓이는 법은 터키나 아프리카처럼 원두가루를 주전자에 넣고 끓인 뒤 원두가루를 가라앉히거나 천에 거르는 방식이었다. 그녀는 필요로 인해 발명을 한 어머니였다. 처음에는 아들의 노트를 찢어서 구멍뚫린 깡통에 넣고 시험해봤다고 한다. 원래 더 편하게 먹는 게 목적이었을 것이다. 천에 거르고 그 천을 나중에 빨고... 이런 번거로움을 건너뛰고 싶어서. 그런데 부수적으로 따라온 효과도 있었다. 맛이 나아진 것이다. 뭐든지 진국으로 오래 끓여 엑기스를 뽑는 것이 한국인의 조리법이지만, 커피는 곰탕과 조금 다르다. 아주 오래 끓이기 전에 적당한 시점에서 멈췄을 때, 잡미가 덜 추출되고 향미성분만 추출되어 오히려 맛도 더 나아진 것이다. 

 

그녀가 발명한 커피필터와 드립퍼의 맛은 원래 그녀가 끓여먹던 방식, 즉 과거 원두가루를 끓는 물에 넣고 펄펄 끓인 뒤 입자를 가라앉혀 먹던 맛과 너무 다른 맛은 아니었다. 멜리타 드립퍼는 추출구가 하나밖에 없다. 여기에 원푸어링방식, 즉 한번에 물을 다 부으면 커피는 뜨거운 물에서 컵라면;; 처럼 오랫동안 익는다. 커피가루가 뜨거운 물에 노출되는 시간이 길고, 맛은 더 쓰고, 진하고, 강하게 된다. 내리는 방식에 따라 커피맛이 달라질 우려도 크지 않다. 

 

커피 드립퍼의 재질은 몇 가지가 있다. 가장 흔하게 마트에서 접할 수 있는 것은 플라스틱과 도자기 재질이다. 이외에 황동, 스테인레스, 유리 등의 여러 재질이 있다. 재질이 다르더라도 디자인은 똑같다. 구멍의 위치와 개수, 사다리꼴의 각도, 리드의 개수 등등. 이런 것들은 커피의 추출속도나 맛을 좌우하는 요소들이기도 하다. 

 

칼리타 

독일제 멜리타는 일본으로 건너갔고, 일본에서 몇 개의 다른 브랜드가 출시되었는데 그 첫번째는 칼리타였다. '까라 멜리타'라서 칼리타라고 한다는 썰이 있다. 1958년에 창업했으므로 멜리타 대비 오십년 정도 후발주자다.

칼리타의 드립퍼는 외관이 사다리꼴로서 멜리타와 똑같다. 추출구가 3개 있다는 것이 차이점이다. 멜리타는 1개, 칼리타는 3개. 고수들은 기울기나 물결무늬 모양차이를 보고 구분할 수 있으려나? 나는 모르겠다. 아무튼 '가라 멜리타' 썰에 의하면, 너무 똑같이 베끼는 건 좀 그렇지 않냐... 는 이유로 구멍을 3개 뚫었다고 한다.

 

일본과 유럽의 커피는 조금 다르다. 유럽에서 커피는 꽤 오래전부터 생활 음료였으나, 일본에서의 커피는 서구문화에 대한 동경과 선망이 포함된 음료였다. 우리나라에서 옛날이나 지금이나 커피 광고에는 갖은 우아를 다 떠는 걸 생각해보자. 게다가 일본에서는 다도라는 매우 복잡한 형식 예절도 있었다. 그래서 일본의 핸드드립 커피 문화는 매우 복잡하고 정교하게 발전되어갔다. 


멜리타의 커피 추출이 한 번에 붓기(원푸어링)라면 칼리타의 커피는 여러번에 나눠붓기 방식이다. 우리가 핸드드립 하면 떠오르는 목이 가늘고 긴, 프랑스 중세 집사가 우아하게 들고다닐 것 같은 그 주전자는 사실은 일본이 원산이다. 현재도 주요 생산국은 칼리타, 하리오 등 일본 브랜드다. 핸드드립 하면 떠오르는 몇 가지 테크닉들은 거의 일본에서 개발되었다. 우아하게 몇 방울 먼저 떨어뜨여서 뜸을 들이고, 타원형으로 빙글빙글 돌려가며서 커피빵을 부풀리고, 몇 번에 나눠가면서 붓는 방식.

맛은 어떻게 다른가? 멜리타의 추출방식을 '침지식', 즉 뜨거운 물에 오래 담궈서 진하게 우려내는 방식이라고 한다면, 칼리타의 추출방식은 '투과식'에 가깝다. 추출구가 3개라 뜨거운 물이 애초에 빠르게 흘러가는데, 그나마 한방에 붓는게 아니라 3번 정도 나눠서 조금씩 조금씩 물을 붓기 때문에 커피가 뜨거운물에 잠겨있는 시간이 훨씬 짧다. 결과적으로 커피는 좀더 맑고, 향기가 부드러운 맛이 된다. 이것이 일본인들의 커피맛의 취향으로 자리잡았다. 

 

좀 더 맑고 향기가 부드러운 맛이라고 하지만 한국인에게는 밍밍한 맛이다. 한국인들이 아이스아메리카노를 마실 때 즐기는 '탁 치는 강렬함'이 없다. 색깔도 덜 까맣고, 맛도 어딘지 숭늉 윗국물처럼 밍숭맹숭하다. 같은 맛을 나쁘게 표현하자면 그렇다는거다.  

 

 

하리오 

일본 커피 드립퍼 시장에서 가장 저명한 인지도를 가진 것은 '칼리타'인데, 현재는 '하리오' 라는 브랜드가 칼리타와 1~2위를 다투고 있다.

 

하리오는 원래 1921년부터 실험용 내열유리기구 (비이커 같은 것)으로 시작한 회사인데, 1950년대 내외에 커피 사이폰이나 퍼콜레이터 등의 커피 기구를 개발했었다. 커피 사이폰은 스타벅스 리저브 등에서 간혹 보이는 기구인데, 진공 여과식 추출기다. 퍼콜레이터는 모카포트와 비슷한데 좀 더 대량으로 커피를 뽑아마실 수 있는 흔한 커피추출 도구다. 아무튼 그런 걸 국내 생산할만큼 일본에서 커피 붐이 뜨거웠다는 이야기이고, 1980년대에는 실험용 깔대기에 착안한 원추형 드립퍼도 개발했지만 성공하진 못하다가, 2005년에 V60이라는 모델을 개발하면서 크게 성공했다. 

 

2005년이면 불과 20년전이라 멜리타, 칼리타 만큼의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제품은 아니다. 다만 일본에서 싱글오리진이 유행하기 시작한 시점이 2000년대 초반이었기 때문에 새로운 드립퍼의 수요가 있었을 것이다. 

 

이 드립퍼는 멜리타/칼리타의 사다리꼴 디자인과 다른 원뿔형 디자인이다. 멜리타/칼리타의 구멍이 물방울이나 간신히 빠져나갈 것 같은 작은 구멍인데 비해서, 하리오의 구멍은 큼직한 하나의 구멍이다. 원뿔형 필터 종이가 바깥으로 쑥 빠져나올만큼 큰 구멍이다. 구멍이 셋이라 멜리타보다 빠르게 물이 나오는 칼리타에 비해서도 좀 더 빠르게 뜨거운 물이 투과될 수 밖에 없고, 좀 더 가볍고 밝은 맛이 강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