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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종사자로서 떠들기

MS, IBM, Google 등 글로벌 IT 업체의 개판 한국어 번역 - 3

by Cyprus 2007. 7. 29.
개판번역

열명 또는 스무명이나 되는 프리랜서들이 제각기 수행하는 작업의 발란스를 어떻게 맞출까?
용어는 어떻게 통일하고, 문장 빼먹은지 안 빼먹은지는 어떻게 검사할까?
그러니까, 정량적인 품질 기준을 어떻게 맞출까?
 
사람의 힘으로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소프트웨어 솔루션이 사용된다.
여러가지 솔루션이 있겠지만, 가장 많이 사용되는 것이 트라도스 태그 에디터(TRADOS Tag Editor)이다.

트라도스 솔루션을 이용한 번역은 우리가 생각하는 일반적인 번역과 꽤 다르다.
이 솔루션을 사용하면 몇 가지 특징이 있는데, 간단히 몇 가지의 예를 들어보면

1) 태그에서 끊어야 한다.

조악하게 예를 들자면 [Click right button when you see the new popup] 이라는 문장이 있다.
이것은 우리말로 [팝업이 나타나면 오른쪽 버튼을 누르십시오] 정도로 번역할 수 있다.

그런데 만약에 트라도스 에디터에서 [Click right button <Tag> when you see the new popup] 이라고 되어있다면 어떻게 번역해야 할까?
태그에서는 문장을 끊어야 한다. 어순을 바꿀 수 없다. 그러니 1) [오른쪽 버튼을 누르십시오. 팝업이 나타난 상태에서] 라고 번역해야 한다.
번역 솔루션에서는 문장의 통합, 어순의 치환 등을 허용하지 않는다. 태그에서는 무조건 끊어야 한다. 당연히 우리말이 개판이 될 수 밖에 없다.

이유가 하나 더 있다.
이 안에서 최대한 성실하게 의미를 살리기 위해서 발악한다면, 2) [오른쪽 버튼을 누르십시오. 단 팝업이 나타난 창 위에서 눌러야 합니다.] 라고 번역해야 한다.
그런데 2) 번처럼 번역하면 빠꾸먹기 십상이다. 왜 그런가?


2) 과거의 번역 결과를 준용해야 한다.

번역회사는 개개인의 번역자의 능력에 큰 신뢰를 보이지 않는다.
그들은 오히려 과거 MS(등의 물주)에서 번역되었던 선례에 신뢰를 보낸다.
지난번 만큼만 한다면 욕은 안 먹기 때문이다.

지난번의 결과물은 솔루션에 DB 형태로 구축이 되어있다.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예를 들면
[Click right button <TAG> when you see the new popup]
이라는 문장을 번역해야 하는데, 작년에 홈페이지 번역 시에
[Click right button] 이라는 똑같은 문장을 [어른쪽 바톤을 누르십니다.] 라고 번역해서 납품되었다고 한다면
(그리고 저 오타까지 다행히도 통과가 되었다고 한다면)
트라도스에는 자동으로 [어른쪽 바톤을 누르십니다] 라는 문장이 초록색으로 떠오르게 된다.

문장 내 단어의 유사성에 따라 초록색 대신 빨간색, 노란색 등이 떠오르기도 한다.
그런데 번역 프리랜서들은 저 초록색으로 번역된 문구는 쳐다보지도 않는다.
100% 동일한 문장에 대해서 과거의 선례를 따르지 않는 것은 썩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를 들자면, 윈도우 비스타를 번역할 때 처음부터 하느냐? 그렇지 않다.
윈도우 XP의 번역 결과를 DB화하고 그것을 기반으로 번역한다.
똑같은 문장은 다시 번역하지 않는다.
구글 애드센스 2.0 웹페이지를 번역할 때 맨땅에서 하느냐? 그렇지 않다.
과거 구글의 모든 한글 홈페이지를 DB화하고 그것을 기반으로 번역한다.

결국 오타가 있어도 고치지 않고, 틀린 것이 있어도 고치지 않는다. 비문이 있어도 고치지 않고, 말이 안 통해도 고치지 않는다. 안 고쳐도 될 뿐만 아니라, 고쳤다가는 월급에 불이익을 받을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글 로벌 기업의 한국어 번역이 개판인 이유는 결국 여러 사람들이 제각기 표준을 지키면서 작업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부작용이다. 사실 번역은 쉬운 일이 아니고, 좋은 번역자를 구하기는 의외로 어려우며, 표준을 지키면서 번역하기는 더더욱 어렵다. 그 고충은 나도 충분히 이해할 만 하다.

하지만 사용자를 대면하는 최전선에 있는 것이 번역인데.
솔루션 문서 같은거야 좀 그렇다고 치더라도, 최소한 웹사이트의 안내문구 같은 것들은 전문 번역자 또는 정상적으로 우리말을 하는 사람의 윤문 과정을 한 번 거치는 것이 고객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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