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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종사자로서 떠들기

쿠팡 상장 즈음의 생각

by Cyprus 2021. 2. 15.

1. 쿠팡이라는 회사를 초기부터 신기하게 봐왔다. 자체 물류를 하겠다는데, 수도권 당일배송 같은 다분히 몽상같은 이야기를 하는게 신기했었다. 당시 언론은 거래액과 매출액을 구분할 줄 몰라서 티몬, 위메프가 매출이 1,000억인데 쿠팡은 매출이 4,000억이라 독주체제에 나섰다는 기사를 쓰고는 했다. 대충 2012년이나 2013년쯤의 일이었던 것 같다. 

 

2. 이 자체물류 체제가 어마어마하게 적자를 내는 것에 대해서는 사람들마다 모두들 고개를 갸웃거렸다. 좋은 거 알겠는데 저게 언제까지 성립 가능한 모델일까?

 

3. 적자규모도 크지만 그걸 계속 돈을 들이부어주는 소프트뱅크도 이상했다. 소뱅이 들이부은 3조에서 이미 밸류에이션이 10조였는데... 이마트가 잘 나갈때 10조 조금 넘는 크기였던 거 같은데, 이마트보다 쿠팡을 크게 보나? 김범석 의장이 여기저기서 '한국 이커머스에서 미국 아마존처럼 지배적 사업자가 없다. 시장의 절반을 먹으면 된다' 같은 말을 하는 건 대외용 멘트이고, 실제로는 다른 맥락이 있겠거니 했다. 심지어 아마존은 지금도 유통의 적자를 클라우드의 흑자로 메꾸고 있다고 하지 않나. 쿠팡은 클라우드를 할 수 없을텐데. 

 

여담이지만... 시장에서 엉뚱한 일을 하는 회사들은 대체로 자신이 엉뚱한 일을 하는 이유를 정확히 설명하는 것 같다. 지나고 나서야 믿을 뿐이라 그렇지... 엘런머스크까지 갈 것도 아니고... 요즘 비트코인 관련 투자해대는 넥슨, 웅진코웨이를 인수한 넷마블... 

 

4.  사업모델 말고도 쿠팡이 신기한 것이 두 가진데, 하나는 회사의 문화. 회사의 일하는 방식이나 문화를 만듦에 있어서 국내 모든 회사는 삼성과 현대의 경영 모델을 따라해왔고, 삼성과 현대는 토요타와 혼다와 소니처럼 되고 싶어했다. 이건희 회장을 비롯한 그 세대의 경영자들은 일본 대학 출신이 많고, 정기적으로 일본을 방문해서 시야를 넓히고자 했다. 21세기 들어서야 경영자들이 일본보다는 미국 MBA 출신들이 많아졌지만, 여전히 과거 오륙십년을 살아왔던 관성이 남아있다. 근데 쿠팡은 노골적으로 아마존을 벤치마킹했다. 직급제도가 아마존과 똑같고, 면접을 보는 프로세스가 똑같다. 경영진을 외국인으로 채웠기 때문에, 명문화되지 않은 문화도 미국식 문화를 따른다. 

 

5. 두 번째로 신기한 것은 개발자의 규모. 지금 쿠팡의 개발자 규모는 1,000명이라고도 하고 1,500명이라고도 해서 정확히 모르겠지만, 이 규모는 유사 업권인 eCommerce의 이베이나 11번가, 인터파크 등과 대비해서 4~5배 많고, 네이버나 카카오와 비교해도 거의 비슷한 숫자다. 그런데 지금도 공격적으로 계속 채용하고 있다.

 

도대체 이게 뭐지? 싶은데 얼마전 진짜로 쿠팡이츠를, 그리고 이어서 쿠팡플레이를 출시하는 걸 보고, 덧붙여 55조의 밸류에이션이 이야기되는 것을 보고서 조금 감이 잡혔다. 이건 네이버와 카카오의 영역을 치고 들어가겠다는 의미다. 

 

우리나라 포털 산업에서 네이버의 지배력, 모바일에서의 카카오의 지배력은 공고하다. 몇 개의 대기업이 실패하고 나간 뒤, '여긴 돈으로 되는 시장이 아니에요' 같은 말도 꽤 많이 했었다. 하지만 대기업이 실패했던 것은 대기업처럼/대충 도전했기 때문에 실패한 것이기도 했다; 돈을 부어야 할 지점을 정한 뒤, 성과가 날 때까지 밑도끝도 없이 돈을 퍼부어대는 방식으로 이커머스를 잡았고, 지금은 배달시장을 잡고 있다. 모빌리티에 이렇게 퍼부으면 카톡택시나 우버를 이길 거다. 엔터테인먼트에 이렇게 퍼부으면 카카오M이나 네이버 웹툰을 이길거다. 

 

이런 게 아니라면 기업가치 55조는 허황된 이야기라서... 오늘자 네이버 시가총액이 60조원이네. 불가능한 이야기는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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