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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생활의 기록/주말농장의 기록

완두콩 재배

by Cyprus 2021. 6. 27.

1. 주말농장을 제대로 하기 전에도 뭔가를 키웠거나 키우려는 시도를 많이 했었는데, 그 중 가장 오랫동안 키워본 것이 완두콩이다.

 

국민학생 때 학교에서 관찰학습 숙제로 내준적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그 시절에 그런 숙제 따위는 없었던 것 같기도 하지만, 아무튼 어릴 때 키워본 것으로 강낭콩, 고추, 완두콩, 해바라기(읭?), 머 이 정도가 기억이 난다. 별로 열리지 않았었겠지만, 그래도 강낭콩을 수확했던 날, 강낭콩을 넣은 콩밥을 지었고, (몇 알 없었기 때문에) 밥 안에서 콩알을 찾기가 쉽진 않았고, 그 콩알을 간신히 찾아냈지만 맛은 없는데, 그래도 내가 키웠으니 맛있다며 스스로 주문을 외었던 기억이 있다. 

 

나는 콩밥을 싫어하는 어린이였고, 내가 키운 콩이지만 맛이 없는 것은 없는 것이라, 스스로에게 주문까지 걸어야 그 콩을 먹을 수 있었다. 그런데 완두콩은 좀 달랐다. 내가 키운 콩이지만 정말로 맛이 있었다. 달착지근하고 더 부드럽고 텁텁하지 않았다. 어렸을 때 콩밥을 그렇게 싫어해서, 콩밥에 든 콩은 열심히 가려냈지만, 완두콩은 좋아해서 오히려 골라가며 먹고 싶었다. 그래도 완두콩을 별로 먹진 못했는데, 그게 완두콩이 비싸서였는지 부모님중 한 분이 싫어했기 때문인지 잘 모르겠지만 별로 먹은 기억이 없다.

 

2. 어른이 된 후로 내가 직접 완두를 키워본 적도 있다. 찾아보니 2013년이었다. http://coldstar.egloos.com/4791679  기록에 남지 않았지만 완두를 키우려는 시도는 한두 해 더 했었던 것 같다. 보통 실내에서 완두를 키우면, 잘 되는 해에는 대여섯 깍지 정도가 열렸다. 몇 개 안 열리는 대신, 열린 대여섯 깍지는 살이 오동통하게 들어서 시중에 파는 완두콩만큼 튼실했다. 그러면 그 완두콩 대여섯알은 어떻게 먹어야 맛있을까를 열심히 고민하는데, 대개는 찌거나 살짝 데쳐서 먹는데, 머랄까, 은식기에 담아서, 은뚜껑을 덮고, 은으로 된 포크와 나이프를 양손에 쥐고 냅킨을 목에 걸고 먹어야 할 것 같은 그런 맛이었다. 

 

3. 주말농장 3년차인데 주말농장을 하면서도 생각보다 완두를 성공해본 해가 없다. 해마다 애착을 가지고 시도했는데 결과는 신통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올해에야 감을 잡게 되었다. 

 

2019년 첫 주말농장에는 직파를 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다이소에서 샀던 천원에 열두개짜리 철사 지주대를 들고 갔다가, 농장의 대장부 아주머니에게 혼났던 기억이 있다. (용인 호박등불농장의 수호신 아주머니인데, 목소리 데시벨이 일반인의 3.5배 정도 되는 분이다-_-) 당시 대화가, 까짓 완두콩이 크면 얼마나 큰다고 이거로 하면 되죠, 했더니, 노지는 달라요 라는 대답이었다. 그 해에 완두콩이 제대로 싹도 안 났고, 조금 큰 완두콩이래야 지주대가 필요없을만큼 밖에 자라지 못했으니 내 주장이 맞긴 맞았던 셈이다. 이겨서 기뻤다 (....)  

 

뒷편 토마토가 본격 성장을 앞둔 가운데, 가운데의 초록색 철사가 꽂힌 자리의 아랫쪽에 완두잎 몇 장이 애처롭게 나와있다. 

 

 

 

2020년은 농장 자체가 흙도 나쁘고, 숲에 바로 이어져있어 벌레도 많고, 기록적인 장마도 있었고... 등등의 핑계가 많지만 아무튼간에 나름 완두를 정성껏 심었는데, 수확은 그다지 좋지 못했다. 나중에야 이유를 알게 되었는데, 완두는 연약하게 생겼고 웬지 열대지방의 온실 같은 곳에서 잘 자랄 것처럼 생겼지만 실제로는 추운 날씨에 더 잘 자란다. 남부지방에서는 늦가을에 심어서 월동 후에 이른 봄에 수확을 하기도 한단다. (사실 더우면 못 자라는 풀이라는게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20년에는 4월 중순인 4/15~20 사이에 집에서 발아를 시킨 씨앗을 4/25에 노지에 장착시켰다. 바람직한 시간 대비 한 달 정도 늦은 거 아니었나 싶다.

 

완두 (20년 5월 17일) . 완두를 제대로 수확하고 싶었다면 5월중순에는 이미 완두가 꽤 키가 자라고 꽃봉오리도 비추기 시작해야 했다. 결국 너무 늦게 심어서 망한 경우다. 
5월 30일. 꽃이 제법 피고 잎도 튼튼해 보이지만... 그건 제대로 큰 완두콩을 못 봐서 그런 게다..
6월 14일. 완두콩이 꽤 매달리기는 했다. 

그래도 20년에도 완두 몇 움큼 정도는 수확을 했고, 은쟁반과 은수저까지 동원하지 않고 그냥 냄비에 삶아먹어도 될 만큼은 수확을 했다. 하지만 들인 정성에 비교하면 별로 수확을 못한 편인데. 이 들인 정성이라는게, 끈 사이에 완두콩 잘 세워보고, 물 주고, 풀 뽑고, 기도(...)한 거 정도다. 이 중에서 완두콩에게 실제로 도움이 된 게 몇 가지나 있는지 모르겠다. 실제 완두콩에게 더 필요했던 것은 덜 더운 날씨가 다였던 것 같다. 

 

 

'21년에는 좀 더 공부를 했고, 완두는 추운 날씨에서 잘 자란다는 것도 학습을 했다. 3월 초에 집에서 포트에다 완두를 심고, 보라색 식물생장등을 비춰주며 싹을 키웠다. 3/1에 몇 알을 심고 다시 3/15에 몇 알을 심었는데... 그런데 주말농장이 문을 여는 4월 초가 되자  3/1에 일찍 심은 것들 중에서는 꽃을 피우려고 망울을 잡는 것까지 있었다. -_- 아니 너무 이른 거 아닌가. 꽃이 일찍 피는 것은 "내가 이대로는 죽겠으니 때는 이르지만 새끼는 쳐야겠소" 정도 의미 아닌가. 

 

4월 10일, 주말농장이 문을 여는 날 제일먼저 완두부터 옮겨심어뒀다. 한 구멍에다 두알, 세알, 많게는 네알까지 심었다. 설사 네 알이 한꺼번에 자란다고 해도 생장에 큰 문제는 없어보인다. 문제는 오히려 나중에 콩이 크게 자랐을 때, 아랫단에 익은 걸 따먹고 윗단에 크고 있는 것들은 놔두려면 콩 사이에 간격이 좀 있어야 하는데, 그런 간격이 확보되질 않는다는거?  

 

4월 중순에 우연히 부산을 갔다가, 길거리에서 충격적인 장면을 보게 되었다. 잎사귀가 내가 아는 완두 잎사귀처럼 생기긴 했는데 저게 정녕 완두란 말입니까? 라는 느낌의 완두 재배 현장이었다. 머... 현장이랄 것 까진 없고, 길거리 주택가에 있는 짜투리 텃밭에, 철심 같은 걸 지주대로 박아두고, 강아지 목줄 두께의 끈을 아랫단, 중간단, 윗단으로 세 번 정도 걸어서 완두콩 줄기를 묶어둔 모습이었다. 거기에 묶여있는 완두콩은 내가 알던 그 완두콩이 아니었다. 아니 완두콩 덩굴손은 가녀리게 자라오르면, 갓난이 손에 손가락 쥐어주듯이 가벼운 끈을 걸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 철심에 묶여있던 건 근당 500원쯤 하는 소여물 같은 포쓰를 풍기며 자라고 있었다. 

 

아 완두콩이 제대로 자라면 이렇게 자라는 거구나. 따먹을 콩도 이런 스케일로 열려야 하는구나. 지주도 이런 식으로 세워야 할 수도 있겠구나. 작년에 내게 노지에서의 지주대는 달라야 한다고 말했던 수호신 아주머니 생각도 나고... 

 

3/1과 3/15, 두 번에 나눠서 심었고, 3월말이 되자 이른 놈은 꽃이 필 정도가 되었고, 늦은 놈이라도 포트에서 키우기는 어려워보일만큼 컸다. 지주대 삼아 나뭇가지 두어 개를 꽂아줬는데 이건 효과가 있었달지 없었달지 잘 모르겠다. 
5월 중순이 되자 제법 무성하게 자라고 꽃도 활짝 피어났다. 작년도 5월과 비교하면 성장에 큰 차이가 난다.  

 

6월 초가 되자 지주대가 기우뚱할 만큼 콩이 많이 매달렸다. 6월 초부터 수확을 시작했다. 

 

 

6월 중순. 좀 더 오래 키우면서 조금씩 따먹고 싶은 생각이 있었지만, 너무 빽빽하게 심은 바람에 아랫단부터 따는게 손이 너무 많이 간다. 결국 다 뽑아서 뚝뚝 끊어냈다. 잘 자란 것도 있고 조금 덜 자란 것도 있었다. 

 

 

 

4. 완두콩을 맛있게 먹는 방법은 ... 

 

- 밥에다 넣는 것은 개인적으로는 비추다. 콩은 10분이면 익는데 밥은 30분 이상 익혀야 해서, 너무 익어 물러 터진다. 특히 압력솥이나, 잡곡과 같이 익히거나, 기타 익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렇다. 

 

- 게다가 밥을 전기밥솥에 보관하게 되면 더 상태가 나빠진다. 

 

- 가장 추천하는 방법은 깍지채로 끓는 물에 10~15분 데쳐서 까먹는 것. 달콤하고, 부드럽다. 

 

- 찜통에 10~15분 찌는 것도 시도해봤는데, 끓는 물에 삶는 것보다 달콤한 맛이 덜했다. 

 

- 콩을 털어내서, 3~5분 정도 후라이판에 물을 붓고 볶듯이 찌다가, 계란물을 붓고 함께 익히면 달콤한 계란 요리가 된다. 일미 계장의 요릿법인데, 콩을 미리 익혀두지 않으면 콩이 좀 딱딱해지는 문제가...  

 

 

 

 

5. 사소한 이야기 몇 가지. 

 

- 멘델이 초록콩과 분홍콩으로 유전자 우성과 열성 실험을 했던... 그 콩이 완두콩이라고 한다. 아니, 완두콩에 분홍색도 있단 말인가? 궁금은 한데 시중에서 본 일이 없어서... 

 

- 영어에서 보통 동글동글한 콩들은 pea 라고 부르고, 콩팥 느낌으로 길쭉하게 생긴 콩들은 bean 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이건 그냥 주방용어일 뿐이고 생물학적 차이 등은 없다고 한다. 

 

- 김동화 화백이 만화 "요정 핑크"에서 불러낸 그린피스 왕국의 요정들은 당연히 green peace일 꺼라고 생각했다가, 어느 날엔가 green peas 즉 완두콩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던 날 깜짝 놀랐었다. 

 

- 일본, 중국에서는 완두를 싹을 틔워서 볶음요리에 넣어 먹는다고 한다. 이게 그냥 완두보다 더 달고 맛있다고 하는데 아직 시도를 안 해봤다. (웬지 비릴 것 같아 시도할 생각이 잘 안 들기는 하는데...) 

나무위키에서 퍼홈. 김동화 화백의 요정핑크

 

 

아무튼 완두콩은 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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